우리가 사는 집은 먹고 마시는 음식만큼이나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
그러니 인간에게, 조금 더 나아가 자연에 가장 이로운 집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흙집에서 그 답을 구한 충북 음성 흙집학교 이시화 교장을 만났다.
- 글 / 길다래 기자 - 사진 / 임승수(사진가)
인류는 오래도록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과 나무로 집을 지어왔다. 새가 둥지를 틀고 개미가 굴을 파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의 재료는 점차 인공의 재료로 바뀌었다. 특히 콘크리트는 싸고, 구하기 쉽고, 다루기도 편리해서 건축의 주재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건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집 짓기는 이제 전문가의 영역으로 이관되었다. 마을 사람이 힘을 합쳐 집을 짓는 문화는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은 대부분 남이 지어준 콘크리트 집에서 산다. 집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도 잘 모르는 채. 이런 집에서 과연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자기만의 아쉬람을 완성하는 수행]
음성IC를 빠져나와 지방도로 달리다가 논과 밭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섰다. 조금 지나니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누르스름한 빛깔의 흙집이 40여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무 지붕위로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고 굴뚝에선 드문드문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과거 어느 시절로 돌아간 것도 같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장 같기도 하다. 여느 도시와는 다른 이채로운 풍경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음성군 동음리 보현산 자락에 있는 황토명상마을이다. 흙집짓기운동본부가 2006년부터 이곳에서 흙집학교를 열어 흙집 짓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약 5000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다 함께 흙집을 짓는 흙두레 모임, 도시민이 흙집을 경험할 수 있는 숙소 등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가장 큰 흙집인 매점에서 흙집학교 이시화 교장(68)과 마주 앉았다.
"흙집학교는 명상 모임에서 시작됐어요. 명상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아쉬람(수행자의 수행 거처)을 직접 짓자는 취지였죠. 흙집이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했고요."
자기 수행과 대안적인 삶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흙집 짓기로 귀결되었다. 자연에 가까운 재료인 흙을 사용하고, 자기 손으로 흙을 개고 쌓아서 집을 짓는 과정 전체가 수행이고 명상이었다.
"언론에서 흙집학교로 명명하는 바람에 엄청난 관심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흙집학교가 위주가 되었죠."
손수 흙집을 짓는 일에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뜨겁던 때였다. 이 교장은 교육 커리큘럼을 정비하고, 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를 출범했다.
"원래는 집 짓기와 무관한 일을 하다가 IMF 때 사업이 어려워져 산속에 들어가 몇 년간 살았어요. 그때 다 무너진 흙집을 혼자 6개월 동안 고쳤는데, 그 경험이 제게 큰 행복과 깨달음을 줬어요."
이 교장은 흙집으로 삶이 새로워졌다고 말한다. 손수 흙집을 짓는 일이 주는 기쁨과 통찰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건강한 흙으로 지어야 진짜 흙집]
흙집학교에서는 여러 흙 건축 방식 중 두 가지공법을 가르친다. 한 가지는 흙벽돌을 쌓는 벽돌조이고, 다른 하나는 볏짚보드 를 사용하는 심벽조공법이다. 흙벽돌은 말 그대로 흙을 압축한 벽돌을 쌓아서 만드는 방법이다.
"흙벽돌로 집을 지으려면 평(3.3 제곱미터)당 200여 장의 벽돌이 들어가요. 30평짜리 집에 6000장 넘게 쓰이는 거죠. 직접 황토를 틀에 넣고 찍어내는 손벽돌이 가장 좋겠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기성 제품을 사용해요."
심벽조공법은 볏짚으로 엮은 판(보드)에 흙을 개어 붙이는 방식이다. 볏짚보드 역시 기성품을 이용한다.
"예전에는 싸리로 왜를 엮어서 거기에 흙을 붙여서 벽을 만들었잖아요. 그걸 간편하게 만든 게 심벽조공법이에요."
두 가지 방식 모두 이중으로 쌓아 벽체 두께가 30 센티미터 이상 되도록 한다. 그 사이에 왕겨숯 등을 넣어 아파트 못지않은 단열 효과를 낸다. 벽과 바닥 마감은 황토로 미장하고, 수수풀 등을 적셔 흙이 묻어나지 않게 처리하거나 한지 벽지 등을 붙인다.
"시중에는 물에 넣어도 끄떡없는 황토벽돌이나 만져도 손에 묻어나지 않는 황토 미장 제품들이 있어요. 그런 제품이 얼마나 건강하고 순수한 흙으로 만들었는지 잘 살펴봐야 해요."
이 교장은 무늬만 흙집이 많다고 비판한다. 화학 성분 범벅인 황토가 많기 때문에 성분을 꼼꼼히 따져볼 것을 강조한다.
"오염되지 않은 흙을 쓰는 게 중요해요. 아무리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도 빗물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그래서 직접 산이나 들에서 흙을 구해서 쓰려는 분들에게는 최소한 표면의 1m는 걷어내고 써야 한다고 조언하죠."
이 교장은 '뜯어 먹어도 되는 재료'로 집을 지으면 괜찮다고 말한다. 먹어도 될 정도로 건강한 재료를 고집하는 일 자체가 건강한 집을 짓는 지름길이다.
[사람은 걸어 다니는 흙집]
제대로 지은 흙집은 인체에 여러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성물질을 해독하는 정화작용이나 원적외선을 뿜어내어 피로를 해소하는 효능 등이 대표적이다. 또 흙으로 집을 지으면 온습도 조절이 뛰어나서 생활하기에 쾌적하다. 흔히 '흙이 숨을 쉰다' 고 표현하듯 공기를 순환시키고, 몸에 유익한 미생물을 함유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체에 해로운 곰팡이나 냄새는 반대로 흡착하는 효과도 있다.
"흙집에서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고 해요. 술을 많이 마셔도 아침에 일어나니 멀쩡하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이런 게 보통사람들도 체감하는 흙의 효능이죠."
이 교장은 흙집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흙벽의 두께가 30 센티미터 이상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은 집 전체를 흙집으로 짓기가 어려워졌어요. 건축법을 지키려니 비용이 많이 들고, 기초나 내진설계 등의 기준 때문에 사실상 반쪽짜리 흙집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방 한 칸, 자그마한 농막 한 채를 제대로 된 흙집으로 지으려는 경우가 많아요."
크건 작건 흙집을 짓는 방법과 원칙은 같지만, 최근 흙집학교 교육에서는 농막 짓기 과정이 강화되고 있다.
이 교장은 흙집이 가장 생태적인 건축물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집을 지을 때 나중에 얼마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해요. 흙집은 70 퍼센트는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해요. 또 흙집은 망가진 벽에 흙만 개어서 발라주면 되니 오래도록 쓸 수 있고요."
정성 들여 지은 집을 보수하는 일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매만지는 일과 비슷하다는 이시화 교장. 30년만 지나면 재건축 논의가 등장하는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흔히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종교에서는 사람은 흙으로 빚었다고도 하고요. 또 누구는 사람은 걸어다니는 흙집이라고도 표현했어요. 그만큼 사람이 흙에 가깝다는 말 아닐까요."
말을 마치며 이 교장이 불그스름한 흙벽을 쓰다듬는다. 투박한 그의 손이 어쩐지 흙벽을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