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물리적으로 거주의 공간이지만 집의 역할을 놓고 볼때 생활의 안식처이자 '삶의 둥지'라는 정서적인 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집'은 가정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쓰이곤 한다. 우리 생활속에서 '집'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앞날을 향한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사는 박노근(70)·정옥분(63)씨 부부에게는 지금 당장 둘이 함께 지낼 집이 없다. 하지만 살던 집을 허물고 인근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벌써 한달 넘게 머무르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 집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잠시 대기중인 '행운'과도 같은 존재다. 수십년 넘게 살아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이었지만 어려운 형편에 집을 고칠 엄두를 못내던 이들 부부였지만 이제는 새집이 다 지어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부엌이나 마루는 물론 방조차도 제구실을 못하던 집에서 어렵게 살던 이들 부부에게 새집을 지어주겠다고 나선 이들은 전국흙집짓기협동조합(조합장 이몽룡). 주봉리 건축현장에서 멀지 않은 음성읍 동음리 황토명상마을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황토흙벽돌로 흙집을 지어 건강한 주거환경을 함께 하기 위한 결성된 단체다. 지난해 5월 조합을 결성한 뒤 흙집짓기학교를 열어 흙집의 장점을 알리고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흙집을 짓기에 나섰던 이들은 마을이 꾸며지고 나자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건강한 주거환경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모인 흙집짓기협동조합은 우선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로 뜻을 모으고 지난 1월 음성군과 '사랑의 흙집짓기' 협약을 맺는다. 이후 군에서 읍·면의 추천을 받아 박씨 부부를 지원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생활환경이 열악한 이웃에게 사랑으로 지은 건강한 집을 지어주기 위한 43㎡(13평) 크기의 '제1호 사랑의 흙집짓기'는 시작됐다.

사랑의 흙집짓기는 지원대상이 집을 새로 꾸밀 여건이 안되는 이웃이기 때문에 집을 짓는 비용은 물론 살던 집을 허물고 설계 등 건축에 필요한 절차와 뒷마무리까지 새집이 만들어지는 모든 일은 도움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자재와 장비 등 직접 건축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협동조합에서 맡았고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 철거는 전문처리업체의 도움을, 새집 설계는 음성군건축사협회(회장 손영태)의 지원을 받았다.

흙집짓기의 기본이 되는 건축인력 문제는 흙집짓기학교 교육생과 자원봉사자, 협동조합 관계자 등의 손을 빌려 해결하고 있다. 경험이 많은 조합 관계자가 공사 전체를 책임지고 이끌고는 있지만 하루 평균 4~5명이 투입되는 인건비 부담없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비용이 줄어들어 사업의 추진동력이 커지고 자원봉사를 통한 '사랑 나눔'이 이뤄지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울산에서 올라온 흙집짓기학교 교육생 이윤철(60)씨는 "생업으로도 가능하지만 남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흙집짓기 교육을 받았다"며 "형편이 어려운 시골사람들을 돕는 일에 동참하게 돼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루에 1~2명 가량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는 단순한 일손보다는 나눔의 온정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홍석인(46·청주시)씨는 "예전부터 흙집짓기에 관심을 갖고 있어 조합 홈페이지 회원으로 등록했는데 좋은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처럼 시간이 돼서 참여하게 됐다"고 참가배경을 소개했다. "요즘은 거의 매일 나오고 있는데 날씨가 너무 덥지만 낡은 집을 헐고 번듯한 집을 지어드릴수 있게 돼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힌 홍씨는 "농촌지역은 고령화로 나이드신 분이 많고 집도 대부분 낡아 이같은 사업을 통해 보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사업확대에 대한 바람을 덧붙였다.

조합측에서 내걸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대상자를 선정하느라 예상보다 늦게 시작된 제1호 사랑의 흙집짓기는 지난달 10일쯤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오는 15일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매일 공사현장에 한번씩은 나와본다는 집주인 박 씨는 "우리를 위해 한낮에도 구슬땀을 흘리는데 냉수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늘 미안하다"며 "아내의 투병으로 사는게 여유롭지 못한데 이렇게 번듯한 집을, 그것도 건강에 좋다는 흙집을 지어줘 너무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 부인 정 씨 역시 "생전에 이런 집에서 살아볼 것이란 생각도 못했었는데 하루하루 집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남의 일 같다"면서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바닥을 다지고 봉사와 사랑으로 흙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리는 '사랑의 흙집짓기'는 앞으로 2호, 3호가 이어지면서 온기를 가득안고 있는 흙집처럼 사랑의 온기를 조금씩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최동일 / 음성

choidi@jbnews.com

◆전국흙집짓기협동조합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흙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흙집짓기'에 나선 전국흙집짓기협동조합(조합장 이몽룡)은 흙집을 주제로 교육과 건축이 동시에 진행하는 전국 최초의 협동조합이다. 명상단체 회원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음성읍 덕생 동음리에 흙집을 짓기 시작한 이들은 현재 32동의 흙집으로 황토명상마을을 꾸몄다. 흙집짓기운동본부로 시작한 이들 단체는 이처럼 흙집짓기의 보금자리가 마련되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곳에서 운영되는 흙집짓기학교는 지금까지 수료생이 2천여명에 이르며 조합원 300여명의 협동조합은 홈페이지 회원만 1만 3천여명을 자랑한다. 건강한 주거환경과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은 사랑의 흙집짓기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자체 등 주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1호 사랑의 흙집의 경우 4천여만원 가량 들어간 자재·장비 비용은 차지하고서라도 사업신청과 접수, 대상자 선정, 옛집 철거, 건축설계와 신고 등 집짓기를 위한 부수적인 과정에 적지않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흙집을 보급하기 위해 '흙두레건축'이란 조합원 상부상조의 건축방법을 도입한 협동조합은 생산과 소비가 공생하는 건강한 공동체 구현을 위해서라도 사랑의 흙집짓기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몽룡 조합장은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드리는 사랑의 흙집짓기가 시작돼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조합원들의 힘을 합쳐 지속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말했다. 최동일 /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