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 운동본부로 가는 길에 마주친 이정표 또한 황토집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하 : 보현산자락 깊은 곳에 자리한 황토 명상마을. 총 30채 규모로, 내년 6월 완성을 목표로 조성되는 중이었다. (사진=최한영 기자)
이시화(53)씨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 흙집짓기 운동본부'는 지난 2007년, 명상수련 동호회 '나를 찾는 사람들(이하 나찾사)'의 회원들에 의해 설립됐다. 이씨는 이 자리에 '황토 명상마을'을 조성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예전부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꿨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9년 전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하게 됐죠. 한동안 귀농학교에 다니거나 귀틀집(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층층이 쌓아 올리고, 그 틈을 흙으로 메워 지은 집), 흙집 등을 짓는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보냈어요. 그러면서 흙집의 매력에 빠지게 됐죠. 그 와중에 뜻을 같이 하던 분들과 함께 '나찾사'라는 명상 동호회를 만들게 됐는데, 회원들 사이에서 '흙집에서 명상수련을 할 수 있는 상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를 계기로 지난 2006년 가을부터 이 자리에 '황토 명상 마을'을 짓게 됐습니다. 마을을 짓는 것과 동시에, 흙집을 짓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흙집 짓기 학교'도 운영하게 됐고요."
▲'흙집 짓기 학교'는 1박 2일짜리 구들반 과정에서부터 7박 8일이 걸리는 정규반 과정, 길게는 5주간의 전문가 과정까지 총 세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전국 흙집짓기 운동본부' 제공)
그렇다면, '황토 명상 마을'을 조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국 흙집짓기 운동본부'라는 단체까지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는, "마을 조성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이 국내 최초의 '황토 명상 마을'로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흙집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문의가 이어졌어요. 특히 귀농에 관심 있는 분들이 전화를 통해 또는 직접 찾아오셔서 많은 것을 물으시더군요. 앞에서 말한 '흙집 짓기 학교'에 등록하고 흙집을 짓기 위해 제주도에서 뿐만 아니라 저 멀리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흙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원래 제가 생각했던 것은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현대판 '아쉬람(ashram. 수행자들이 명상을 하던 고대 인도의 초막)'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흙집 자체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더라고요. 본말이 전도됐다고 할까요? 그만큼 흙집에 대한 여론이랄까, 시대적인 요구가 제 기대 이상으로 컸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흙집마을 한 곳만 조성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되도록 많은 곳에 흙집을 짓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어 지난 2007년 이를 위한 단체인 '전국 흙집짓기 운동본부'를 만들게 됐습니다."
▲ 이시화(53)회장은 "원래 의도는 명상을 하기 위한 '아쉬람'을 만들기 위해 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인데, 도리어 '흙집'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며 본말이 전도된 듯 하다"며 웃었다.
보현산 자락에 위치한 '황토 명상 마을'은 아직 공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마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는데, 이씨는 "운동본부에서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다른 지역의 흙집을 짓는 현장에 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도, 총 30채 규모로 조성중인 마을 곳곳에는 물에 갠 진흙을 바르고 그 위에 흙벽돌을 올리며 집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기자가 마을을 찾아갔을 때는 이씨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흙벽돌을 나르고 흙을 바르며 집을 짓는 중이었다. 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흙집 짓기 학교'의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는 김융기(57)씨는 "내 손으로 흙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과정은 모두 끝났지만, 좀 더 머무르며 지낼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공사가 한창인 집도 있는 반면에, 몇 곳의 흙집은 이미 완성돼 있었다. 완성된 집 안에서 전통 아궁이 불을 지피고 있던 조호갑(38)씨는 "흙집에서 잠을 자면 피로가 훨씬 빨리 풀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흙냄새도 좋아요"라며 흙집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 가까이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은 완성된 집과 공사 중인 집이 뒤섞여 다소 어수선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년 6월에 모든 공사가 끝나면 이곳은 국내 최초의 황토명상마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사진=최한영 기자)
이씨는, 사람들이 흙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반 환경적인 소재로 지어지는 요즘 건축물로 인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해 졌어요. 우리 주위의 건물들을 보세요. 시멘트를 비롯한 각종 건축 재료 안에 유해 화학물질이 얼마나 많습니까. 최근 인류는 유해물질이 가득한 재료를 가지고 건물들을 지어왔어요.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 지는 것은 당연하죠. '새집증후군'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시간이 지나 이런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나면 그 재료들은 각종 환경오염의 주범이 돼요. 이런 모든 일들이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병들게 하는 거죠."
건물을 짓는 재료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이씨는 말한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들을 보면, 차갑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기가 안 느껴지죠.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기 마련인데, 이런 삭막한 회색 건물들에 둘러싸인 채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정이 없어지고 심성도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많은 문제들을 안게 된 데에는 이러한 현대 건축도 한 몫을 했다고 봐요."
▲이시화 회장은 "각종 유해화학 물질이 들어있는 건축자재를 가지고 짓는 집 안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시대 현실에 비춰볼 때 흙집은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이씨는 말한다. "흙집을 보세요. 기본적으로 흙 자체가 살아있는 소재에요. 한 티스푼의 흙 안에 수 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이러한 흙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면 육체적으로 몸에 좋은 것뿐만 아니라 심적으로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효과가 있어요. 또, 흙집이 허물어지면 그 안에 있는 건축 재료들은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고요."
과학적으로도 흙집의 효용은 계속 밝혀지고 있다. 우리 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화현상을 일으키는 물질 중 하나인 '과산화지질'이라는 독소를 계속 만들게 되는데, 흙의 강한 흡수력으로 인해 과산화지질이 중화 또는 희석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또한, 흙에서 내뿜는 원적외선은 인체 내 혈액순환을 돕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국내외 과학계에 공인돼 있다. 나아가, 기존 주택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 화학물질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흙집에 살게 되면 육체적으로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평안도 가져올 수 있다고 이시화 회장은 말한다.(사진=최한영 기자)
또한 이씨는, 흙집을 통해 공동체의식의 회복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흙집이 한 채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을로 조성이 된다면, 잃어버린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 거에요. 예전 우리 선조들이 살던 촌락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 같은 담벼락도 없고, 문도 걸어 잠그지 않은 채 서로 교류하면서 살았어요. 흙집마을을 조성하고 이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통해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정서적 황폐함을 치유할 수 있을거에요."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흙집마을의 다양한 모습들은 도시인들에게 쉼과 평안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사진=최한영 기자)
현재 조성 중인 30동 규모의 황토명상마을이 완성되면, 이곳은 각종 명상․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교육연수원으로 이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연수원이 완성되면 도시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치유 프로그램, 천연염색․텃밭 가꾸기․도자기 굽기와 같은 농촌과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매월 한 번씩 명상음악회 등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에는 NGO등록도 예정돼 있다.
황토명상마을 맞은편에 있는 11570m²(3500여평) 규모의 부지에서는, 올해 안에 20동 규모의 100% 주거용 황토마을 공사가 시작된다. "지금 짓고 있는 30동 규모의 명상마을은 '나찾사' 교육연수원으로 건축허가를 받은 곳이에요. 저희가 계획하고 있는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장소 및 상근 직원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 될 것이고요. 맞은편 20동의 건물이 각종 기반시설을 갖춘 마을의 기능을 하게 될 거에요"라고 이씨는 말한다.
또한, 강원도 홍천군, 경상북도 의성군, 충청북도 제천시 등의 후보지중 한 곳에서 올해 안에 제 2의 명상마을 공사가 시작된다. 이씨와 '전국 흙집짓기 운동본부' 팀원들의 목표는 전국에 10개 이상의 황토명상마을을 짓는 것인데, 이씨는 아주 낙관적이었다. 흙집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각종 관공서나 학교, 복지시설을 흙집으로 짓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이씨는 "이곳 흙집 짓기 학교를 수료한 분 중에서 천주교 신부님이 있었는데, 내년에 그분이 충청북도 괴산군에 흙집으로 대안학교를 하나 지을 예정이에요. 전라남도 목포시에는 150평 규모로 어린이집이 지어졌고요. 발상의 전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으로도 3~4층 정도는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완성된 한 흙집의 대들보에는 '흙 나무 바람 그 안에 참사람'이라는 상량문이 적혀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을 담은 글귀인 듯 했다.
중앙일보 제 7기 대학생NGO기자
최한영 [한국외대 독일어과]
journalist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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