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

“젊었을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했거든요. 이제서야 그 소원을 푸는 것 같습니다.”

종로에 위치한 목공예 학원 작업실에서 나무 깎기에 여념이 없는 김종천 씨(54). 지난해 LG그룹 임원을 끝으로 은퇴를 한 김 씨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목공예에 도전했다. 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 수강생과 함께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전한다. “배우는 즐거움이 커요. 앞으로 목공예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해도 꾸준히 손을 놓지 않고 이 일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수준급 대열에 오르겠죠? 좋은 작품 만들어서 집에서도 쓰고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최근 김 씨처럼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직장인들이 목공예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목공예 학원에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 학원에서는 평일 오전반, 오후반, 야간반도 모자라 주말반까지 개설했다. 한 반에 10~15명이 수강하는데 이들은 평일에 3시간, 주말에는 6시간 동안 지도를 받는다. 보통 6개월 정도면 목조각, 서각에 관한 기본적인 과정은 모두 마칠 수 있다. 김용춘 한양목공예학원 원장은 “칼을 다룰 줄 알면 쉽게 할 수 있는 게 서각이다. 그렇지만 나무와 칼 쓰는 법을 제대로 알려면 목조각을 해야 한다. 나무가 다양하다 보니 나무의 성격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 할 일이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생각하는데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에도 교육 진행

목공예에 대한 관심은 목조각에 머물지 않는다. 직접 톱질이나 대패질을 배워보겠다는 남성들도 꽤 많이 있다. 1월 4일 이른 아침 목동에 위치한 헤펠레목공방을 찾았을 때도 40~50대 남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모여 있었다. 연초 첫 번째 교육이라 그런지 모두들 들뜬 분위기였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전문과정 수강생들로 이번 달이 마지막 과정이다. 지난 3개월 동안 기본적인 수공구(톱, 대패, 끌) 다루기부터 기계류(슬라이딩 테이블 쏘, 루터, 다축보링기)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단순히 못이나 스크루(나사못)를 이용한 가구 만들기 작업이 아니다. 말 그대로 취미과정이 아닌 전문과정이다. 전문과정을 수료하게 되면 짜맞춤, 원목, 천연페인트를 이용한 고급 가구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 이런 역량을 키워가는 게 작품과정. 전문과정 이후 과정으로 지금까지 배운 기술을 갖고 평소 만들어보고 싶었던 제품들을 공방의 지도하에 제작하게 된다.

“톱질이나 대패질은 남성들의 ‘로망’ 아니겠어요? 나무의 향과 감촉도 정말 좋고요. 다음 달부터는 작품과정에 들어가요. 직접 설계한 작품을 만드는 거죠.”

공방에서 교육받은 지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는 김준식 씨(61)는 최근 목공예 삼매경에 빠졌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교육이 아쉬울 뿐이다. 전문과정이 끝나면 아무 때나 공방에 와서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꾹 참는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지난해까지 욕실용품 제작회사 대표로 근무했던 김 씨는 회사를 지인에게 넘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했다. 목공예 기술을 배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별도의 작업실을 마련해 그곳에서 개인 작업을 할 때까지는 계속 공방에 나올 예정이다.

공방 교육생 중에는 대학교수도 있다. 부천대 미술대학에 근무하는 이만재 교수는 주말마다 공방을 찾아 교육을 받는다. 전공이 공예, 디자인 쪽이라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교수는 공예를 전공했지만 한 번도 나무를 다뤄보지 못했다고 한다. “흙, 금속을 이용한 조각은 해봤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무와는 인연이 없었어요. 나무는 자연 재료다 보니 꼭 다뤄보고 싶다는 동경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정년까지 10년 정도 남았는데 남은 기간 동안 목공예 기술을 익혀 작품 활동할 때 활용해 볼 생각이에요.”

목공예에서 머물지 않고 직접 집을 짓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오는 3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최성철 씨(군인·55)는 지난 12월 충북 음성에 있는 흙집학교를 찾았다. 은퇴 후 귀농을 할 생각인데, 조그마한 황토방이라도 하나 지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용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렸을 때 집안 어르신들이 벽돌을 만들고 구들장 놓는 풍경을 많이 봐 오면서 자랐어요. 이제는 기술이 발전돼 예전같이 집 짓는 게 어렵지는 않아 보이더라고요. 벽돌 쌓는 지식도 있고 미장 일도 해봤기 때문에 집 짓는 노하우를 배웠으니 혼자서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들의 ‘로망’으로 노후 준비

흙집학교는 2006년 11월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달 모집하는 정규반 기수는 51기. 벌써 50기까지 진행됐다는 얘기다. 수료생만 1000여명이 넘는다. 7박 8일 동안 합숙을 하며 교육을 받는데 기존에 지어진 흙집 건축물에 대한 실사와 함께 현장 실습도 병행한다. 정규반 과정을 이수한 수강생 중에서 흙건축 전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취업반도 마련돼 있다. 이들은 3개월간 전국의 흙집 짓기 현장에서 수습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직장인들을 위해 올해부터는 주말반도 개설된다.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의 요청에 따라 5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이들은 1박 2일씩 총 3회에 걸쳐 정규반과 똑같은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이시화 흙집학교 원장은 “정규반을 수료하면 자동적으로 흙두레 전국모임의 일원이 된다. 향후 자신의 집을 지을 때 흙두레 회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흙집을 짓는 데에는 평균 1달 반에서 2달 정도가 걸린다. 황토방 같은 경우에는 20일이면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흙집학교와 더불어 한국해비타트가 운영하는 목조건축학교도 인기다. 천안에 위치한 목조건축학교는 2002년부터 시작돼 현재 30기까지 진행됐다. 다만 5주간 이론, 실습이 집중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들은 수강이 힘들다. 박소이 한국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 간사는 “정원은 12명 내외인데 대부분이 남성이다. 은퇴자들도 많이 찾아온다. 이들은 대부분 목조건축학교를 수료한 뒤 직접 집을 짓거나 ‘희망의 집짓기’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리더로 활동하기도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