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집' 지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충북 음성에서 뜻 깊은 실험이 진행 중이다. 흙집 50여 채가 한꺼번에 들어서는 것이다. 흙집이 무엇이기에 그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이 느는 것일까. 그 비밀과 ‘나만의 흙집’ 짓는 법을 알아보았다. 
 
 
 [31호] 2008년 04월 15일 (화) 10:37:34 오윤현 기자 noma@sisain.co.kr  
 
 
     
ⓒ시사IN 오윤현

이시화씨가 거주하는 음성군 동음리의 흙집(위). 외양도 시원해 보이지만, 집안은 천장이 높고 흙벽이 숨을 쉬어서 더 상쾌하다.
 

인간은 거의 모든 면에서 동물보다 월등하다고 알려져 있다. 집짓기에서도 과연 그런가. 새와 벌, 개미보다 인간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고개를 드는 까닭은 그들은 스스로 보금자리를 짓지만, 인간은 그 일을 건설사나 건축업자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흙집학교 ‘흙처럼아쉬람’을 운영하는 고제순 박사가 보기에 현대인의 그같은 모습은 꽤 안쓰럽다. “자기와 가족이 살 집을 짓는 데, 자기 땀과 정성이 깃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살림집을 짓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적지 않은데, 그것을 건축업자에게 빼앗기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요즘 들어, 마치 그같이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겠다는 듯 직접 흙을 주물러 살림집이나 주말 별장을 짓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를 운영하는 이시화씨도 그렇다. 충북 음성 동음리에서 그는 2년 넘게 거의 매일 흙집을 짓고 있다. 4월 초, 신록이 눈부신 날에도 그의 손에는 전동 대패와 흙손이 들려 있었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휘쭈휘쭈’ 들리고, 오얏나무 흰 꽃잎이 하늘하늘 날아드는 흙집 건축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흙집은 사람 살리는 자연 의원”


축조 중인 집은 제법 규모가 커 보였는데, 이미 벽 쌓기가 한창이었다. 기술자 두 명이 정교한 손놀림으로 물에 갠 맨흙을 흙벽돌에 발라 담을 쌓고 있었다. 흙벽돌이 단단해 보여서 직접 구운 것이냐고 묻자, 이씨는 “전북 익산 벽돌공장에서 들여왔다”라고 말했다. 

흙벽돌은 두 종류. 외벽과 내벽에 쌓는 벽돌이 따로 있었다. 유압 프레스로 압축해서 찍은 외벽용 벽돌은 수십 년간 비바람에 버틸 만큼 딴딴했다. 반면 내벽용 벽돌은 황토와 물을 섞어서 가래떡처럼 뽑아서 그런지, 비교적 겉면이 부드러웠다. 무게는 둘 다 장당 14 kg 남짓. 한 손으로 들어올리기 버거울 정도의 무게였다. 10평짜리 집을 짓는 데 이같은 흙벽돌이 2000장가량 들어간다.    

알싸한 생강나무꽃차를 앞에 두고 앉자, 이씨의 흙집 예찬이 뒤따랐다. 그에 따르면, 흙집을 짓다 보면 흙이 주는 편안함과 경건함 때문에 누구나 부드러워진다. 남보다 돋보이려는 희망도, 집을 번쩍거리게 하려는 성취욕도 사라진다. 또 땅과 혼연일체가 되고, 비나 태양 등을 염두에 두고 일하다 보니 천연덕스레 자연에 순응하는 법까지 배운다. 

흙집 예찬은 이씨만 하는 게 아니다. 고제순 박사도 흙집 상찬이 대단하다. 그에 따르면, 흙 자체가 생명이어서 흙집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흙집에는 늘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다. 때문에 흙집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 할 수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흙집이니 당연히 보배롭다. 게다가 짓는 사람마다 축조 방법이 다르고, 또 각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건축선을 찾아내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흙집은 항균·제독 기능과 습도 조절 기능, 그리고 공기 정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또 벽이 스스로 숨을 쉬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흙의 특성상 개·보수도 수월해서건물 유지비도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


15평짜리 흙집, 빠르면 한 달 만에 ‘뚝딱’

     
흙집 짓기는 평평한 곳에 터를 닦으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돌이나 시멘트를 이용해 기초를 쌓고(사진①), 구들을 놓고(사진②), 흙벽돌로 벽을 쌓으며 완성해 간다(사진③). 흙집 짓는 사람들은 이 일이 “신나고 즐겁다”라고 말한다. 벽을 적당히 쌓은 뒤에는 문틀을 세우고(사진④), 그 위에 찰주(사진⑤·지붕 위 둥근 나무)를 올린 뒤 서까래를 우산살처럼 걸친다. 


이시화씨는 명상동호회 ‘나를 찾는 사람들’(나찾사) 회원들과 함께 흙집 50여 채를 짓는 중이다(아래). 


이미 공사가 상당히 진행되어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집짓기는 터 닦기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시멘트 벽돌이나 돌 등으로 기초를 쌓고, 큰방·작은방·거실·화장실·주방 등을 구획한다. 집의 밑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시멘트 벽돌을 사용하는 것은 기초가 단단해야 집이 더 오래, 더 튼튼하게 버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기초단이 마르면 그 안에 방구들을 놓고, 아궁이와 굴뚝 등을 만든다. 내외 벽을 평균 35cm 두께로 쌓아올리고, 문틀을 세우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사진 참조). 때로는 흙벽에 원형 통창(筒窓)을 내기도 하고, 새나 사람 모습의 부조(浮彫)를 새겨넣기도 한다.

벽을 다 쌓으면 천장에 나무를 가로지른 다음 그 위에 찰주를 올린다. 찰주는 피라미드형 천장 꼭지점에 위치하는 굵고 둥근 고정목. 우산살 모양의 서까래를 끼우는 용도로 사용한다. 거기에 서까래 16~20여 개를 걸어 고정시키면 얼추 방사형의 지붕이 완성된다. 

그 다음 서까래 끝을 평고대라는 기다란 사각형 나무로 연결하고, 그 위에 얇은 송판(루바)을 가로로 촘촘히 뒤덮으면 활짝 펼친 우산 같은 지붕이 된다. 그 위에 하얀색 부직포를 덮고, 지붕을 고정하는 덧서까래를 건다. 그런 다음 단열과 습기를 막기 위해서 부직포 위에 숯을 깔고, 그 위에 20cm 두께로 흙을 평평하게 깐 뒤 합판으로 덮는다. 다시 그 위에 방수 시트와 너와 등을 뒤덮으면 지붕 작업 끝!           

숙련된 기술자들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4인 가족이 살 만한 15평(아파트 24~27평 규모)짜리 흙집을 30일에서 45일 만에 짓는다. 그러나 개인이 지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흙집학교 등에서 집짓기 기술을 배우고, 필요할 때마다 기술자를 불러도 석 달 이상 걸린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 기술자들이 지으면 벽돌 3000장 값을 포함해 평당 250~350만원은 잡아야 한다(00쪽 표 참조). 어떤 자재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직접 지으면 훨씬 저렴하다. “일반 자재를 쓰면 평당 100만원에도 거뜬히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다”라고 이시화씨는 말했다.    


흙집의 가장 큰 약점은 방수

흙집은 흙벽돌로 짓는 집만 의미하지 않는다. 목재 거푸집에 흙을 채워 다져서 벽을 만드는 담틀법으로, 황토벽에 통나무를 박아서 만드는 황토·통나무법으로 만들어도 흙집으로 불린다. 기둥과 기둥을 가로질러 나무를 대고 그 가로 나무에 세로로 나무 힘살을 넣은 후, 수수깡·대나무·싸리나무 등을 칡이나 새끼줄로 엮은 뒤 흙을 바르는 삼벽조로 지은 집도 마찬가지이다. 

‘심벽 흙집’은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해온 방식으로 짓는  집인데, 나뭇가지·수수깡·대나무 등으로 흙을 채울 그릴을 만든 뒤 거기에 진흙·짚·물을 섞은 흙을 발라서 완성한다. 

그런데 나 홀로 집을 짓고 나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흙집학교 ‘흙처럼아쉬람’의 고제순 박사에 따르면, 절차와 원칙만 잘 따르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러려면 우선 집을 짓기 전에 가족 구성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흙 건축에 대한 공부와 흙 건축 기행도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좋은 터, 실력 있는 설계자를 만나면 금상첨화. 공사 중간중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더 안전하다.

물론 ‘어설픈 목수’가 만든 집에는 엄연히 문제가 존재한다. 추위? 아니다. 옛 흙집담의 얄팍한 벽(5~7cm)을 30~40cm로 두껍게 해서 이제 추위 걱정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화장실이나 온수? 이것들 역시 이미 기술적으로 해결이 다 된 상태다. 문제는 방수다. “흙집은 확실히 시멘트 집보다 방수에 취약하다”라고 이씨는 털어놓았다. 

흙이 마르면서 갈라지거나 터져, 그 사이로 물이나 습기가 들이친다는 것이다. 본드나 화공약품을 써서 막을 수도 있지만, 친환경 주택의 틀이 깨지기 때문에 그 틈을 메우고, 또 메우는 수밖에 없단다. “방수 연구가 진행 중이어서, 머지않아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흙집을 통해 소박한 꿈을 완성해가는 중이다. 명상동호회 ‘나를찾는사람들’(나찾사) 회원 30여 명과 함께 음성 동음리에 1800여 평의 땅을 구입해, 그 위에 흙집 50여 채를 짓는 것이다. 영적 활동을 함께하는 공동체 마을이다. 현재 완성되거나 건설된 흙집은 일고여덟 채.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왔다는 50대 중반의 이옥양씨는 “3~4년 뒤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 시골 흙집에 살면서 수많은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면 참 좋을 것 같다. 어느 지역에 흙집을 지을까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한 번쯤 귀농을 꿈꾸며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나 홀로 마음속 집을 현실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자기 살림집을 직접 지어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처럼, 그 가치를 생각하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흙집 전문가 이시화씨나 고제순 박사에게도 지금 당신처럼 머뭇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당찬 의지와 도전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꿈많은 초보자들, 주목!  
 
 
 [31호] 2008년 04월 15일 (화) 10:39:03 오윤현 기자 noma@sisain.co.kr  
 
     

2006년 11월에 문을 연 ‘명상과 함께하는 흙집 짓기 학교’(www.gudo.net)도 손기술이 둔한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매달 7일간 진행하는 강좌에서는 5~15평짜리 원형·사각·팔각 흙집 짓는 요령을 배운다. 

“동음리를 ‘흙집 백화점’으로 만들겠다”라는 이시화씨의 장담처럼, 다양한 흙집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이 학교의 장점. 

흙집 교육과 함께 생태·영성·공동체에 관한 수련도 수업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 13기 수강생이 실습 중이며, 14기(5월10~17일)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1박2일 ‘구들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