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

14일 오전 11시 충북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 보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황토마을의 6.6㎡(약 2평) 남짓한 흙집짓기 실습장에서 중년 남성들이 황토를 척척 개어 벽돌 위에 바르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사내들 옷섶으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흙덩어리를 주무르던 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 이시화(55) 원장이 "외벽에 바를 황토는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뽑아내야 한다"고 설명하자 수강생 박정섭(62)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씨는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짓는 게 마지막 꿈"이라며 흙 묻은 손으로 코밑을 훔쳤다.

이곳은 흙집 짓기를 가르치는 '흙집 학교'다. 황토마을 주민들이 '우리만의 흙집짓기 노하우를 전수하자'고 뜻을 모아 연 실습장이다. 마을 설립 멤버인 이시화 원장은 흙집학교 교장이자 황토마을 촌장 같은 일을 맡고 있다.

이날 전국에서 몰려온 수강생 24명이 황토를 개고 발랐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중년 남성이 대부분이다.

2006년부터 600여명이 이곳을 거쳐 가면서 입소문을 탔다. 수강생들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황토마을에서 지내며 구들 놓는 법, 지붕 올리는 법 등을 실습한다. 이 원장은 "생태 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에는 여성과 젊은이들도 많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황토마을에는 현재 흙집 30여채가 모여 있다. 전국 최대 흙집 단지다. 명상 동호회인 '나를 찾는 사람들' 회원들이 "우리만의 명상 공간을 만들어 보자"며 지은 집들이다. 동호회 회원 4명이 2005년 충북 음성에 비닐하우스 숙소를 짓고 황토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 동안 꾸준히 흙집을 지어나갔다. 황토마을 주민도 처음 4명에서 10가구 15명으로 불었다.

황토마을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이 마을에 산다. 흙집학교의 실습감독인 김봉출(44)씨는 전직이 룸살롱 사장이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사는 게 싫었던 그는 귀농을 생각했다. 설비와 건축시공을 하며 '건축밥'을 먹었던 적이 있는 김씨에게 흙집 짓는 황토마을은 안성맞춤이었다. 가족들을 설득했다. "학교는 어떻게 하느냐"며 반대하던 아내와 아이는 김씨의 끈질긴 설득에 2005년 함께 음성으로 내려왔다.

그는 "지금은 공기가 맑고 먹을거리가 신선해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며 웃었다. 총무를 맡은 이용현(32)씨는 8년 동안 건축회사에서 아파트 현장관리 일을 했다. 연봉이 4000만원을 넘었다. 가족들이 말렸지만, 생태건축에 관심이 많은 이씨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이씨는 "무엇보다 여기에서는 저녁이 되면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고 말했다. 이시화 원장은 황토마을에 들어오기 전 컴퓨터 서적을 펴내는 출판사를 운영했다. IMF 때는 사업에 실패해 산속에 들어가 움집에서 살기도 했다. 이 원장은 "각자 사정이야 어찌 됐건 우리는 흙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했다.

황토마을 사람들과 수강생들은 '흙'이라는 공통어로 모든 대화를 이어갔다. 쉬는 사이에도 구들방은 몇 개 만들 것인지 의견을 나눴고,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올 것인지도 물어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제주도 에서 왔다는 우제홍(54)씨는 25년 교사생활을 접고 최근 펜션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펜션을 흙으로 지으면 인기를 끌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세대 등에 강의를 나간다는 이전경(48)씨는 조그마한 다실(茶室)을 마련하기 위해, 이주욱(47)씨는 은퇴 후 눌러 살 집을 짓기 위해 황토마을을 찾았다. 직장을 다니는 남편 대신 배우러 왔다는 김옥순(52)씨는 "아이들이 다 크면 이런 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었다"며 흙벽을 쓰다듬었다. 그는 "나는 기관지가 좋지 않고 막내 아이는 아토피가 있는데 흙집에서 살다 보면 나을 것 같다"고 했다.